올해는 1948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마무리된 제주 4.3사건 발생 61주기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주 4.3사건은 대부분 무고한 양민들이 3만명 가까이나 희생된 안타까운 현대사입니다.

사실 그 규모에서 본다면 한국판 킬링필드라고 불릴만할 정도입니다. 초토화작전으로 아예 불타 사라져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만 수십, 수백에 이를 정도입니다.

 

3만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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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피해규모를 3만명으로 소개했냐면, 4.3진상위원회에서 당시 피해에 대해서 신고를 받았습니다. 신고된 사망 및 실종자만 1만 5천이 넘었죠. 50년이 넘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이미 숨진 목격자나 유족들을 추측할 때 더 많아진다는 결론입니다. 더욱이 앞서 말씀드린 초토화작전으로 마을자체가 몰살되어 유족조차 없는 경우도 많은 것도 이유입니다.

여기에 더욱 가슴아픈 이유는 함부로 4.3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가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최근에도 4.3과 관련된 보고서를 만들었던 제민일보 기자라든지, 독립영화 감독 등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조사를 받았을 정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당시 미군이 작성했던 보고서에도 약 2만 8천여명으로 보고되고 있고, 80%정도가 진압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어떤 학자는 피해규모를 8만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관광서비스지역인 제주도는 여초지역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배웠던 내용입니다.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역은 여성 인구가 많은 여초지역이다. 사회시간에 이렇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제주도는 남초지역입니다. 남자인구가 더 많아졌죠. 제주도는 관광서비스업이 더욱 발달하고 있는데, 왜 여자가 아니라 남자 인구가 늘어났겠습니까?

결국 사회시간에 배운 내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제주도가 여초지역이 되었던 이유는 한국현대사에 있습니다.

일본의 강제징용, 한국전쟁과 더불어 남자를 몰살시켰던 4.3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구 30만의 제주도에서 남자 수만명을 죽였으니 (당시 여성 피해자도 많았습니다. 다만 남자 비율이 더 높았죠) 제주도에 남자가 일시적으로 크게 줄어버렸던 것입니다.

 

제주도는 변방의 땅

정확히 11년전, 평화공원이 생기기 전에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밤새 진행되 아침에야 끝난 본풀이 굿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국내언론의 무관심에 놀랐었죠.

중앙에서 취재도 없을 뿐더러 제주권 방송에서만 잠시 촬영을 하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아침까지 남아서 끝까지 촬영을 하고 돌아간 방송사가 한군데 있었습니다. 그 방송사는 다름아닌 NHK였죠.

참 가슴이 아픕니다. 아픈 역사를 묻어버리라고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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