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도 미군정이 실시된다. 내려진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올라간다.

미군 제59군정중대가 1945년 11월 9일 상륙하고 스타우트 소령이 제주도 도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 때 스타우트 군정관은 일제 시대에 일하던 경찰과 관리들을 재임용함으로써 민심을 자극하게 된다.

 

제주도의 건국준비위원회 지부는 1945년 9월 22일 인민위원회로 재편성된다.

초기에는 미군정과 협력관계를 유지했었다.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도민들이 직접 구성한 읍면리 단위까지의 도 전체 조직으로 성장하고 1947년 3월까지 공식 조직으로 활동한다.

 

제주도 인민위원회의 간부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이 많았다. 더구나 소문난 친일파만이 배제되었을 뿐 이데올로기가 아닌 하나로 뭉친 제주도를 대표할 만한 자치기구였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더구나 중앙 인민위원회와 거리를 두어 독자성이 강했으며 강한 세력에 비해서 온건한 정책을 추구했다. 미군정과의 관계도 원만해서 전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활동을 했다.

이에 따라 각 마을에 학교가 세워지고 자치를 위한 준비를 해나가게 된다.

 

1947년 2월 23일 제주도 민주주의민족전선이 결성된다. 이는 기존 인민위원회와 대중정치단체를 총망라한 단체였다. 결성대회에는 당시 박경훈 제주도지사가 축사를 하는 등 제주도의 대연합이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체는 뜻하지 않게 3.1운동 기념행사에서 경찰의 발포를 맞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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