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살고 있는 곳, 그럼 신선의 살고 있는 세계는 어디일까요? 그 곳은 '영주산'입니다. 한라산의 또 다른 이름이죠.

오늘 소개하는 이 곳 방선문은 신선세계와 인간세계의 경계선이라고 할만한 아름다운 곳입니다. 국어교과서에도 소개되었던 최익현의 '유한라산기'에도 방선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관문이었던 셈입니다.

 

들렁귀, 등영구, 환선대

본래 지명은 '들렁귀'입니다. 제주말에서 '들렁'은 '속이 비어 툭 트임'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귀'는 입구를 뜻하는 말이구요. 이 곳 말고도 '들렁'이 붙는 지명은 여럿 있습니다. 예래 갯깍 주상절리대의 속이 뚫인 바위가 있는 곳의 지명이 '들렁궤'이고, 서홍동 마을 언덕위에 있는 고인돌과 비슷한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이 곳은 '들렁모루'라고 불립니다.

이 곳의 지명은 '들렁귀', '방선문', '등영구', '환선문' 등이 있습니다.

또 하나 이 곳은 '영주10경' 중 하나인 '영구춘화'의 장소입니다. 주로 '영구춘화'를 이야기 할 때 한라산에 넓게 핀 진달래와 철쭉 사진을 담지만, 본래는 이 곳 절벽 사이 사이에 꽃이 핀 모습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영구춘화라는 말은 '등영구의 봄 꽃'인 것이죠.

지금은 꽃이 핀 모습을 많이 볼 수 없지만, 간혹 피어나는 '제주 참꽃'의 아름다움은 이 곳에서 알게 됩니다. (최근에는 마을에서 참꽃을 심어 놓기도 하였죠.)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정말 문처럼 속이 뚫린 바위가 있습니다. 일부러 함께 간 후배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사진 기술로는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더군요.

 

물은 사라졌지만

정말 커다란 바위가 많이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이 계곡에 물이 흐르면서 바위를 무너뜨린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곳에 배를 띄워 놓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던데... 배는 고사하고 물 한 방울 보기 힘든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잠을 자기 좋은 곳이라 (차를 세우고 나무 그늘 밑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죠) 자주 찾았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물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원인으로 바로 위에 있는 골프장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조금만 상류로 가면 골프장 카트용 다리가 있을 정도로 절벽 바로 위가 골프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잔디에 물을 주기 위해서 너무 많은 지하수를 퍼올려서 이 곳의 물이 말랐다는 이야기가 틀려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연주하는 음악

가을에 낙엽이 떨어질 때 이 곳을 찾아 보세요. 바람도 조금 불면 더 없이 좋구요.

낙엽이 절벽의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계곡 안에서 울려 퍼지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는 5월에 '계곡음악회'가 열립니다. 굳이 앞에 가서 앉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제주의 역사를 간직한 곳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위마다 새겨진 마애명이 있습니다. 사진의 글은 영조 때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등영구'라는 한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후대의 사람들이 홍중징의 글씨를 방해하듯이 글을 써놨습니다. 오른 편의 글씨는 '이명준'이라는 정조 때의 목사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댓글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 곳 지명인 '방선문'입니다. 아주 깨끗하고 크게 쓰여 있습니다. 누가 이 글씨를 썻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물이 거의 없는 계곡이지만 잠시 쉬어 가고 싶을 때 이 곳에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지도를 옮겨 보시면, 계곡 좌우로 골프장이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산방산을 아실겁니다.

하나의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해발 365m입니다.

이 곳은 몇 년 전 산불이 난 이후로 천연기념물인 암벽식물지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등산로의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시겠지만, 이 산에도 등산로가 있습니다.

언뜻보기에는 등산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산 후면부로 등산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코스가 있습니다. 정말 가파라서 힘들기는 하지만 산방산에 올랐을 때, 바다를 바라보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진] 제주 서남부에 위치한 웅장한 자태의 산방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등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위낙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 등산을 했을 때 찍은 사진인데… 갑자기 떠올라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산방산을 등산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낙서라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정성(?)들여 바위에 글씨를 새겨 넣었네요.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죠.

 

한글은 물론 한자로까지 새겨 넣은 글씨가 대단합니다.

왼쪽에 보이는 ‘경’이라는 글씨는 깊이가 1cm는 족히 되어 보입니다.

이 정도로 글씨를 새기려면 분명 ‘정’과 ‘망치’를 챙겨 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갔다가 매직으로 적는 수준의 낙서가 아니라 글씨를 이름을 새겨넣고 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고 올라왔을 겁니다.

 

이런 글씨들은 언제 새겨 넣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낙서는 누군가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주변으로 따라서 하게 되겠죠.

사진에 소개해 드린 글씨는 이 정도 뿐만 아니라 무지 많습니다. 큰 바위 곳곳에… 사람 키가 닿지 않을 것 같은 곳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행동이 많이 없어졌겠지만, 다시 한 번 자연을 이렇게 훼손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포스팅을 해봅니다.

[사진] 방선문계곡의 마애명 – 영조때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의 글씨

 

사진의 글씨는 산방산이 아니라 제주시 방선문계곡 바위에 새겨져 있는 홍중징의 한시 ‘등영구’입니다. 이 시절에 이런 행동도 저는 옳은 것이 아니였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자기 이름 석자를 낙서처럼 새겨 놓은 것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리플달기를 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시더군요,)

혹자는 몇 백년이 흐르면 바위에 새겨진 ‘마애명’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1. 신호등 2009.06.09 17:59 신고

    저런거 볼 때 마다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구요...
    자기 집 대문에 낙서하는것과 같은 의미라는걸 모르나...

    • k2man 2009.06.09 18:13 신고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행동들이 많이 줄어 들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미지식물원의 용설란 등 여기 저기 낙서로 얼룩져 있죠.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2. 정성욱 2009.06.09 19:03 신고

    자연에 낙서하는게 뻘짓인걸 알고도 저러니 문제 ㅎ 가끔 다른나라찍으러 갔을때 우리나라 사람 이름적혀있으면 손발이 오글오글 쪽팔려죽을꺼같아요 ㅋ

    • k2man 2009.06.09 19:41 신고

      해외에 나가보질 못해서..
      아직도 저런 분이 계시다면 가장 먼저 고쳐야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방선문은 신선계와 인간세상을 잇는 문이라고 합니다.

이 문을 지나면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들어 간다고 합니다.

제주목사였던 김영수의 친필인 환선대라는 글씨가 있답니다. 신선을 찾아 문에 들어섰는데 신선을 만나지 못하자 누대에서 신선을 불러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유배를 왔다가 유한라산기를 남긴 최익현, 김영수, 영조때의 목사 홍중징, 이명준, 이괴, 김몽규, 고경준, 이원조, 이기온,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 홍규 등등

가장 오래된 마애명은 광해군 1년인 1609년 김치 판관의 것이고 대부분은 18,19세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쓰려고 제주역사기행이란 책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제머리에는 저런 정보를 오래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ㅋㅋ


 

방선문은 부임한 제주목사 같은 지방 고위 관료나 유배된 유명 인사들 등이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영주산을 오를때도 이 곳을 거쳐가야 했고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바위 곳곳에 선현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 보인다고 마구잡이로 찍기에는 그랬습니다.

예전 제주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그다지 좋게 기억되지 않는 이름들을 이 곳에서 꽤 많이 확인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제주민에게 폐를 끼친 목사의 글이라면 참 민망해 질것 같아서 다음에 찍기로 했습니다.

다음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가보려고 합니다.

 

 

제주역사기행을 읽을 때 나왔던 대목을 드디어 하나 찾았습니다.

가운데 정말 누가 보아도 뛰어난 필체로 보이는 글이 있습니다.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글인데 이 글 중 앞 3글자가 방선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등영구입니다. 이 지역 지명이 들렁귀인데 비슷한 소리가 나는 등영구를 쓴 것 같다고 합니다. 뜻으로 하면 영주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글이 있습니다.

홍중징보다 50년 후인 정조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명준 목사의 이름이 바로 오른쪽에 있습니다.

글씨체가 다른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아도 정말 좋은 작품 같아 보이는데..

양옆에 마치 방해를 하듯 씌여 있는 글들이 미워보입니다.

이런게 방선문을 찾을 때의 재미인가 봅니다.

아 천장에 누가 적었는지 모르는 방선문이라는 글씨가 있다던데 다음에는 반드시 찾아 내겠습니다. ^^

한자라 참 어렵습니다. 한자공부하고 찾아야 할까 고민입니다.

제가 찾은게 잘못되었으면 지적바랍니다.

 

 

여름에 저 바위사이로 물이 흐르면 정말 감동일 것 같습니다.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바위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겨울에는 눈 쌓인 계곡.. 계절마다 아름다움이 있을 것만 같은...

올해에는 자주 찾고 싶어 집니다.

 

방선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제주도 홍보 책자를 보더라도 영주십경중 영구춘화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에는 한라산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철쭉꽃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영구춘화의 배경은 이 곳 방선문입니다.

옛날(호랑이가 담배 폈을지도 모를)에는 계곡의 바위 사이사이로 피어있는 철쭉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영구춘화라 했다고 합니다.

image

점심시간에 방선문을 찾았습니다.

눈도 오고 혹시나 눈덮힌 계곡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image

방선문은 신선계와 인간세상을 잇는 문이라고 합니다.

이 문을 지나면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들어 간다고 합니다.

제주목사였던 김영수의 친필인 환선대라는 글씨가 있답니다. 신선을 찾아 문에 들어섰는데 신선을 만나지 못하자 누대에서 신선을 불러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유배를 왔다가 유한라산기를 남긴 최익현, 김영수, 영조때의 목사 홍중징, 이명준, 이괴, 김몽규, 고경준, 이원조, 이기온,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 홍규 등등

가장 오래된 마애명은 광해군 1년인 1609년 김치 판관의 것이고 대부분은 18,19세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쓰려고 제주역사기행이란 책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제머리에는 저런 정보를 오래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ㅋㅋ

 

방선문은 부임한 제주목사 같은 지방 고위 관료나 유배된 유명 인사들 등이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영주산을 오를때도 이 곳을 거쳐가야 했고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바위 곳곳에 선현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 보인다고 마구잡이로 찍기에는 그랬습니다.

예전 제주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그다지 좋게 기억되지 않는 이름들을 이 곳에서 꽤 많이 확인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제주민에게 폐를 끼친 목사의 글이라면 참 민망해 질것 같아서 다음에 찍기로 했습니다.

다음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가보려고 합니다.

image

제주역사기행을 읽을 때 나왔던 대목을 드디어 하나 찾았습니다.

가운데 정말 누가 보아도 뛰어난 필체로 보이는 글이 있습니다.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글인데 이 글 중 앞 3글자가 방선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등영구입니다. 이 지역 지명이 들렁귀인데 비슷한 소리가 나는 등영구를 쓴 것 같다고 합니다. 뜻으로 하면 영주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글이 있습니다.

홍중징보다 50년 후인 정조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명준 목사의 이름이 바로 오른쪽에 있습니다.

글씨체가 다른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아도 정말 좋은 작품 같아 보이는데..

양옆에 마치 방해를 하듯 씌여 있는 글들이 미워보입니다.

이런게 방선문을 찾을 때의 재미인가 봅니다.

아 천장에 누가 적었는지 모르는 방선문이라는 글씨가 있다던데 다음에는 반드시 찾아 내겠습니다. ^^

한자라 참 어렵습니다. 한자공부하고 찾아야 할까 고민입니다.

제가 찾은게 잘못되었으면 지적바랍니다.

image

여름에 저 바위사이로 물이 흐르면 정말 감동일 것 같습니다.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바위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겨울에는 눈 쌓인 계곡.. 계절마다 아름다움이 있을 것만 같은...

올해에는 자주 찾고 싶어 집니다.

image

어제 저녁부터 생각보다 많은 눈이 왔습니다.

올 겨울이 가기전에 눈 쌓인 방선문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폭설에 미처 생각치 못하다가 1월에 갔었습니다.

기다리던 눈이 왔는데 따뜻한 햇살에 눈이 대부분 녹아 버렸습니다.

누가 이 돌을 올려 놓았을 까요

200년전 조선시대 유생들이 올려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상상을 해봅니다.

참 귀엽지 않나요?? ㅋㅋ

image

아쉽게 눈이 녹았지만

하얀 눈속의 푸르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방선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제주도 홍보 책자를 보더라도 영주십경중 영구춘화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에는 한라산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철쭉꽃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영구춘화의 배경은 이 곳 방선문입니다.

옛날(호랑이가 담배 폈을지도 모를)에는 계곡의 바위 사이사이로 피어있는 철쭉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영구춘화라 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계곡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이렇게 철쭉을 심어 놓았습니다.

중간 중간 볕이 잘들기 위해서인지 밑둥으로 잘려나간 나무가 있어 오히려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봄에 가보지 못해 바위 사이로 철쭉이 피어날지 모르겠지만

올 봄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찾으려 합니다.

아~~ 매년 봄에 이곳에서 방선문계곡 음악회를 한다고 합니다.

이때도 꼭 찾을 예정입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