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8일부터 2009년 6월까지 이어진 제주공항 집단 학살지에 대한 2차 유해 발굴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1,2차 발굴로 수습된 유해는 총 259구이며, DNA조사를 통해서 유족을 찾게 됩니다.

이명박정부 들어서 4.3추모사업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있습니다.

추모사업이라고 건물 짓고, 박물관 만드는 일만 있는게 아닙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찾아 유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 드리는 것도 하나입니다.

이 처참한 사진을 보며 할말이 없습니다.

제주해군기지를 왜 반대하냐는 분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제주도민의 속을 들여다 본다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없습니다.

제주도민 9명 중 1명이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대한민국 군인에 의해서요. 사진처럼 처참한 몰골로 돌아 가셨습니다.

제주도에 그렇게 군사기지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의 마음을 먼저 다독거리셔야 합니다.

아직도 유해를 발굴해야 할 학살터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들어 약속되었던 예산들이 모두 취소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행을 가시는 정방폭포가 어떤 곳인지 아시나요?

사람을 죽여보지 못한 군경의 훈련용으로 총살을 하고 폭포 아래 낭떠러지로 내 던졌던 곳입니다.

그런데 과거 군사정권처럼 이명박도 도민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막아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1992년 다랑쉬오름에서 4.3희생자 유해가 발굴되었고, 그 이후 이 유해는 유족들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모두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유족들을 찾았음에도 유족들을 협박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주도민의 오감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겁니다.

이제도 제주도 어르신들은 그날에 대해서 말문을 닫고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군인에게 끌려가 죽을까봐 그럽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군인을 이렇게 무서워 하시는데… 군사기지가 들어오는걸 환영해야 합니까?

해군기지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 분들의 마음을 먼저 다독거려 주셔야 할겁니다. 그게 먼저입니다.

 

[사진] 2009년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된 184구의 4.3희생자 유해

 

[사진] 2007년 발굴중인 4.3희생자 유해

지난 4월 3일 4.3평화공원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늦었지만, 정리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노대통령님 서거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4.3사건을 가지고도 좌우에서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지난 세월을 들춰내어 무엇하겠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화해와 상생은 진실을 규명하고 난 이후에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덮어 버리면 그 이면의 갈등은 영구적으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진실을 규명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힘든 길을 거쳐야 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던 4.3사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라산 곳곳에서 발견되는 깨진 솥단지 등 생활용품 - 당시 이 척박한 산속에 많은 사람들이 숨어서 살아야 했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발견된 다랑쉬굴 내부 - 숨어 살기 위해서 이 곳 다랑쉬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토벌대에 의해서 모두 학살되었다. 발견된 유골은 유족에 대한 압력으로 모두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고, 굴 입구는 큰 바위로 막아서 폐쇄해 버렸다. 현재 이 다랑쉬굴 입구를 일반인이 찾기는 어렵다.

 

 

 

북촌 너븐숭이 애기무덤 - 1949년 1월 17일, 함덕 주둔 2연대 군인들에 의해 북촌리 주민들이 집단 학살되었던 곳으로 당시 최대 학살사건으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어린 아이가 죽으면 묘를 쓰지 않는 전통이 있다. 수습되지 않았던 아이들을 묻은 작은 묘가 수십여기가 있다.

 

 

정방폭포 –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4.3당시 최대의 학살터였다. 폭포 위의 건물은 일제시대의 단추공장이다. 4.3당시 이 공장건물에 갇혀 있다가 폭포 위에서 학살되었다. 앞서 소개한 북촌리 사건과 비슷한 점은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없는 군인과 경찰들에게 학살을 하도록 해서 담력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는 진술이 있다.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 이 곳은 일제시대의 비행장인 알뜨르비행장 인근에 위치한 탄약고터였다. 태평양전쟁말기 탄약고를 폭파시키면서 거대한 구멍이 생겼는데, 이 곳에서 수백명이 학살되었다.

수년동안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시신이 모두 엉켜 있었다고 한다. 결국 시신은 인근 백조일손지묘에 함께 안장되는데, 이는 ‘백 할아버지에 한 자손’이란 의미이다.

 

 

낙원동성 – 4.3당시 초토화작전(해안으로부터 5km이상 들어간 중산간지역 마을을 말그대로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거치면서 해안지역 마을에는 성을 쌓고 성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성을 쌓고 죽창을 들고 지켜야 했다. 현재는 남아 있는 곳이 얼마 없지만 해안 모든 마을에 성을 쌓았다고 한다.

 

 

비목 – 4.3당시 무장대에 의해 순직한 경찰의 비목, 모든 사람이 피해자이다.

 

 

농업학교 – 미군정, 제9연대, 제2연대 등이 주둔하던 곳이기도 하며 수용소의 역할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구금되어 있다가 학살되었다.

 

 

감찰청 – 제주경찰청의 전신인 제주경찰감찰청의 4.3당시의 모습, 문 밖으로 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

 

 

  1. magijm 2009.06.03 22:11 신고

    무조건 덮어버리는 것은, 용서도 아니고, 화해는 더더욱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내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알면서도,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거나 화해를 청하지 않아도, 복수는 하늘이 해 줄 것을 믿고, 자기 자신은 상대방을 향해 웃어주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하늘 아래서 가능하기나 하겠냐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지만, 그리고 실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저로서도, 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용서로 바꿔야 하는 힘든 점이 있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골병 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골병 들게 됩니다. 화병이 나거나, 분에 못 이겨서 제 명에 못 살 거예요. 여하튼 용서라는 건, 그저 덮어두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화해라는 건, 상대방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할 때 가능하다는 것. 둘 다 사람에게 속한 것은 아닌 듯 한데, 그래도 사람으로 살면서 용서하거나 화해하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는데도, 후회는 없겠죠.

    • k2man 2009.06.04 12:04 신고

      말씀처럼 정말 사람이 진정성있는 용서와 화해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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