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수많은 용출수가 있습니다. 화산섬이 특성상 제주도는 비가 많이 와도 물이 흐르지 않고 지하로 스며들어 버립니다. 한라산에서 스며든 물은 해안에서 다시 솟아 나게 되는데, 이 것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지장샘과 같은 용출수입니다.
제주도의 마을들이 해안을 따라 자리잡게 된 이유가 바다에 가깝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장샘은 서귀포 서홍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디 서홍동은 동홍동과 하나의 부락이였습니다. 이 둘을 합쳐 예전에는 홍리라고 했었습니다. 그 규모가 커지면서 서홍동과 동홍동으로 나뉘게 되었죠.

그런데 수많은 샘들 중에서 이 지장샘이 유명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 전설을 한 번 들어 보시죠.


사진의 표석(?)에 있는 전설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고려 예종때(서기 1110년경) 송나라에서는 탐라에 인재가 태어난다는 풍문이 떠돌아 송나라 조정에서는 압승지술에 능한 호종인에게 탐라에 가서 십삼혈을 모두 막으라고 명하였다. 호종단이 처음 지금의 남원읍 위미리를 경유하여 홍로에 있는 샘을 찾아 나섰다.
호종단이 홍로에 닿기전 어느날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 점심그릇인 행기에 물을 가득히 담아 소 짐바구니에 속에 감추면서 만일 누가 와서 이 물을 찾더라도 모른다고 해주시오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호종단이 나타나 농부에게 물었으나 농부는 모른다고 했다.
호종단은 근처를 헤매면서 물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며 자기의 술서를 찢어 버리고 돌아가 버리자 농부는 백발노인이 시킨대로 감춰두었던 물을 갖다 부으니 거기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물은 지혜롭게 감추어졌다고 하여 지장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20년이 되었네요. 그 시절에 친구들과 찾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 봤습니다.

위치는
경도  126 : 33 : 38
위도  33 : 15 : 54

물이 샘속는 곳입니다. 아주 풍부한 수량을 갖고 있는 곳은 아닙니다. (예래 논짓물 같은 곳을 보면 논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수량을 갖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어렷을 때 기억과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수 개발이 많아져서 이런 샘들이 말라가도 있다던데, 이 곳은 어떤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제주의 용천수에는 이렇게 여러 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로 물을 흘려 보냄으로써 적은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물이 솟는 가장 윗 부분은 먹을 물을 뜨는 곳이고, 아래쪽에서는 빨래 등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용하지 않지만요.


지장샘에는 송사리 네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황폐해 졌는지 두 마리는 죽기 직전의 상태더군요.

샘에는 깨진 유리병과 쓰레기가 널려 있어서 이 때문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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