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지방은 모두 비슷하겠지만, 제주에는 마을마다 크고 작은 포구가 있습니다. 어떤 포구는 너무 오래되어 배를 대기에도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포구는 현대적으로 확장 공사를 벌인 대형 포구도 있습니다.

제주여행을 한다면 이런 포구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테마를 갖고 여행을 해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보목포구는 어떤 곳?

경도  126 : 36 : 35
위도  33 : 14 : 10

오늘 소개해 드릴 포구는 보목포구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해 있으며, 서귀포시내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고, 유명한 정방폭포와도 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 포구의 옛 지명은 “볼래낭개”로 “볼래”라는 말은 “볼래나무(보리밥나무)”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이 마을의 지명은 “볼래리”, “볼목리”, “보목리” 등으로 변화해 왔던 것 같습니다.

 

도대불과 테우

제주의 여느 포구들처럼 활기찬 곳입니다. 가운대 보이는 도대불(옛 등대)이 이 포구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보목포구의 도대불은 1920년에 세워졌습니다. 과거에는 생선기름 등을 이용해서 여기에 불을 지펴 밤길을 안내했습니다.

테우는 제주도 전통 뗏목입니다. 근해에서 주로 자리돔 등을 잡을 때 사용했던 일종의 어선입니다. 이 테우도 도대불과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현대적인 등대가 세워져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주의 포구를 다니다보면 도대불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참 반가울 때가 많습니다.

 

섶섬과 제지기오름

보목포구 앞에는 섶섬(숲섬)이 운치를 더해 줍니다.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섬이 아름다운 포구입니다. 가까이 있는 섶섬뿐만 아니라 포구 뒷편으로는 뾰족 솟아 있는 제지기 오름이 있습니다. 높아보이지만 정상까지는 30분이 채 안걸려 도착하는 곳이고, 포구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습니다.

 

아래는 2007년 1월 1일, 새해맞이를 나갔던 보목포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보여 새해를 기다렸지만, 날씨가 흐렸던 탓에 일출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제주시 화북동에 위치한 화북포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화북포구는 조선시대에 이보다 좀 더 동쪽에 있는 조천포구와 함께 가장 중요한 포구였습니다. 제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전남 강진등에서 배를타면 해류와 바람에 의해서 이 곳 화북포구와 조천포구로 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제주성과 가깝기 때문에 이 두 포구만을 이용해서 육지를 왕래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제주사람들은 함부로 제주를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관리를 위해서도 몇 개의 포구를 지정한 것 같습니다.



화북포구의 역사를 알려주는 표석입니다.


'제주역사기행'이라는 책에 보면

영조11년(1735년), 김정목사는 화북포구 정비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정목사가 임기를 마치고 상경을 준비하던 도중에 화북진성내에서 돌연사 하였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마치 화북포구 공사도중 사망하였다고 와전되었다가 또다시 직접 돌까지 져나르며 공사를 하다가 무리해서 사망했다고 미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망원인은 알수 없다고 하니, 내가 적고 있는 글이 사실이 아니라 정말 돌을 져나르다 과로로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표석 옆에는 오래돼 보이는 비석이 있습니다. 김정목사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합니다. 한자에 약하다보니 도대체 머라고 적혀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김 이라는 글자는 보입니다. ^^



김정목사의 공덕비 바로 옆 서쪽에는 해신사라는 자그마한 당이 있습니다. 용왕신을 모시는 곳으로 순조 20년(1820년)에 제주 목사였던 한상묵이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유교사회에서 무속신앙의 한 형태인 용왕신을 모셨다는 점이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무속신앙이 워낙에 강한 제주민을 관체제 하에 두기위한 방법으로 이런 사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으로써 바다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갖는 것이기 때문이라네요.


아무리 권세가 있고 이름이 있어도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니까요. 추사 김정희도 제주를 떠나면서 이 곳에서 용왕신에게 제를 지내고 떠났다고 합니다.



헌종 15년(1849년) 제주 목사였던 장인식목사가 사진에 나와있는 "해신지위"라고 씌여진 위패를 안치하였다고 합니다.

  1. 윤초딩 2009.05.16 16:18 신고

    관리를 잘 안하나봐요..
    쇠사슬도 다녹슬고 나무 부러져서 쓰러지게 생겼고..

    • k2man 2009.05.17 17:44 신고

      현대적인 관광지를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조그만 부분을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공무원인 친구들 보면, 그래도 너무 힘들게 일하는 것 같아서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
      방문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