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8

4월 3일, 정운찬 총리의 행보를 보며 느낀 안타까움

4월 3일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잊혀질 수 없는 아픔의 날입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억울하게 희생된 분이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4.3진상조사 보고서에는 2만 5천~3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나라의 중앙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4.3위원회의 위원장은 총리가 됩니다. 4.3특별법 제정 이후, 총리가 위원장이 되면서 위령제에 총리가 참석하는 것은 의례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파 정부라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그런 일이 없더군요. 작년에는 한승수 총리가 모터쇼 참석을 이유로 4.3 위령제에 불참하는 일이 있었죠. 올해는 정운찬 총리가 참석한다는 내용을 하루..

극단의 아름다움과 극단 폭력이 만났던 곳, 잃어버린 마을 - 무등이왓

잃어버린 마을은? 제주 4.3사건 진압과정 중 해안선에서 5km이상 들어간 마을을 모두 불태워 버리는 ‘초토화작전’이 있었습니다. 중산간지역의 유격대에게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명분이였지만, 이로 인해 중산간지역 사람들은 무장세력과 무관하게 엄청난 희생을 치뤄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중산간마을이 불태워졌고, 또 많은 수의 마을들은 복구되지 못하고 영원히 잃어버린 마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위치 평화로에서 동광방향으로 빠져나오면 동광육거리가 나옵니다. 이 중 S-Oil 주유소 옆길로 빠져서 1km정도 가면 있습니다. 다음 스카이뷰로 보기 위도 126 : 21 : 8 경도 33 : 18 : 25 무등이왓 표석 아래의 표석의 전문입니다. 여기는 4.3사건의 와중인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

기암 절벽과 웅장한 폭포가 어우러진 정방폭포

제주도에는 가고 싶은데, 갈수가 없으신가요? 다음 로드뷰로 제주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라산도 등산하고, 관광지도 둘러보고, 아름다운 길을 드라이브 해보시면 어떨까요? ^^ 아름다운 제주의 구석 구석을 담아 주시고 계시는 다음 관계자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정방폭포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정방폭포를 다녀 오실 수 있습니다. ^^ http://local.daum.net/map/index.jsp?cx=400058&cy=55410&level=2&panoid=1453178&pan=303.84164677605884&tilt=-5.506363143621874&map_type=TYPE_SKYVIEW&map_hybrid=true&map_attribute=ROADVIEW&screenMode=n..

제주/제주여행 2009.07.11

올해도 제주에 봄은 오는가? 제주 4.3, 그 끝은?

올해도 제주에 봄은 오는가? 제주의 가장 잔인한 계절, 봄… 제주의 봄은 봄이 아니다. 제주도민들은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봄이 오는 것을 힘들어 한다. 자신의 가족, 친구의 할아버지, 삼촌… 제주도민 중 아픔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제주 4.3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4.3은 이념갈등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던,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인 25,000 ~ 30,000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던 4.3은 언제야 끝나, 진정한 제주의 봄이 찾아 올까요? 제주 4.3사건은? 삼일절 발포사건과 총파업 1947년 삼일절, 경찰이 시위 군중에 발포하면서 6명 사망, 8명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인 반경활동을 ..

한국판 킬링필드 제주4.3 61주기, 희생당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올해는 1948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마무리된 제주 4.3사건 발생 61주기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주 4.3사건은 대부분 무고한 양민들이 3만명 가까이나 희생된 안타까운 현대사입니다. 사실 그 규모에서 본다면 한국판 킬링필드라고 불릴만할 정도입니다. 초토화작전으로 아예 불타 사라져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만 수십, 수백에 이를 정도입니다. 3만명이 희생됐다? 관련글 : 올해도 봄은 오는가? 제주 4.3 그 끝은? 제가 왜 피해규모를 3만명으로 소개했냐면, 4.3진상위원회에서 당시 피해에 대해서 신고를 받았습니다. 신고된 사망 및 실종자만 1만 5천이 넘었죠. 50년이 넘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이미 숨진 목격자나 유족들을 추측할 때 더 많아진다는 결론..

잃어버린 역사, 제주4.3사건 - 두 번째

이 번 글은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있었던 위령제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새내기였던 1998년에 위령제를 찾았던 이 후로 11년만에야 위령제를 다시 찾았습니다. 당시에는 한라체육관에서 밤새 굿을 했었죠. 제주도 전통대로 심방(무당)이 나서서 진혼굿을 했습니다. 어찌보면 지금의 틀에 박힌 위령제보다 당시의 진혼굿을 밤새 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밤 새 굿을 하며 혼령을 위로하고, 굿을 마치며 모든 사람들이 함께 춤을 추며 놀다가 음식을 나눠먹는… 진정 화해와 상생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웬지 위령제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한다기 보다는 행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1998년 위령제에서 유일하게 밤새 모든 화면을 촬영해 간 방송사가 한 군데 있었습니다. 그 곳은..

잃어버린 역사, 제주 4.3사건 - 첫 번째

노무현대통령님께서 서거하시고 돌이켜보니, 제주4.3사건이 전국적으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노무현대통령님께서 마련해 주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2003년 제주4.3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가 마무리되고 정식 보고서가 채택되었으며, 해당 연도에는 노무현 대통링께서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2006년에는 역대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제주4.3추모행사에 참석하셨습니다. (올해에는 대통령은 물론 4.3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총리 조차도 참석하지 않았죠.) 이번 글을 시작으로 제주4.3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고자 합니다. 4월 3일의 제주4.3평화공원 - 1 지난 2009년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이 날 희생자를 기리는 비석 제막식도 있었습니다. 공식 확인된 희생..

제주 근현대사 아픔의 현장, 제주를 두 번 죽이는 일본

일본의 이번 망언으로 제주도민으로써 말로 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전에는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이 제주도 독립이 어쩌고 말을 했다가 제주도민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었습니다. 제주도가 왜 그리 민감한지, 제주도의 근현대사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나 국내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4.3사건 등으로 큰 난리를 겪었던 제주는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당선되려면 무조건 "무소속"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었고, 최근에는 조금 다르지만 한때는 실제로 그랬었으니까요.) 근현대사에 있어서 제주도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제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학살과 피해를 겪지 않은 지역이 없겠지만, 제주도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될 날이 멀어 보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