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주4.3사건

4.3사진을 둘러보며.. 화해와 상생은 진실과 용서에서 부터 시작된다.

k2man 2009. 6. 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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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4.3평화공원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늦었지만, 정리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노대통령님 서거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4.3사건을 가지고도 좌우에서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지난 세월을 들춰내어 무엇하겠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화해와 상생은 진실을 규명하고 난 이후에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덮어 버리면 그 이면의 갈등은 영구적으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진실을 규명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힘든 길을 거쳐야 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던 4.3사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라산 곳곳에서 발견되는 깨진 솥단지 등 생활용품 - 당시 이 척박한 산속에 많은 사람들이 숨어서 살아야 했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발견된 다랑쉬굴 내부 - 숨어 살기 위해서 이 곳 다랑쉬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토벌대에 의해서 모두 학살되었다. 발견된 유골은 유족에 대한 압력으로 모두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고, 굴 입구는 큰 바위로 막아서 폐쇄해 버렸다. 현재 이 다랑쉬굴 입구를 일반인이 찾기는 어렵다.

 

 

 

북촌 너븐숭이 애기무덤 - 1949년 1월 17일, 함덕 주둔 2연대 군인들에 의해 북촌리 주민들이 집단 학살되었던 곳으로 당시 최대 학살사건으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어린 아이가 죽으면 묘를 쓰지 않는 전통이 있다. 수습되지 않았던 아이들을 묻은 작은 묘가 수십여기가 있다.

 

 

정방폭포 –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4.3당시 최대의 학살터였다. 폭포 위의 건물은 일제시대의 단추공장이다. 4.3당시 이 공장건물에 갇혀 있다가 폭포 위에서 학살되었다. 앞서 소개한 북촌리 사건과 비슷한 점은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없는 군인과 경찰들에게 학살을 하도록 해서 담력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는 진술이 있다.

 

 

섯알오름 탄약고 학살터 – 이 곳은 일제시대의 비행장인 알뜨르비행장 인근에 위치한 탄약고터였다. 태평양전쟁말기 탄약고를 폭파시키면서 거대한 구멍이 생겼는데, 이 곳에서 수백명이 학살되었다.

수년동안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시신이 모두 엉켜 있었다고 한다. 결국 시신은 인근 백조일손지묘에 함께 안장되는데, 이는 ‘백 할아버지에 한 자손’이란 의미이다.

 

 

낙원동성 – 4.3당시 초토화작전(해안으로부터 5km이상 들어간 중산간지역 마을을 말그대로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거치면서 해안지역 마을에는 성을 쌓고 성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성을 쌓고 죽창을 들고 지켜야 했다. 현재는 남아 있는 곳이 얼마 없지만 해안 모든 마을에 성을 쌓았다고 한다.

 

 

비목 – 4.3당시 무장대에 의해 순직한 경찰의 비목, 모든 사람이 피해자이다.

 

 

농업학교 – 미군정, 제9연대, 제2연대 등이 주둔하던 곳이기도 하며 수용소의 역할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구금되어 있다가 학살되었다.

 

 

감찰청 – 제주경찰청의 전신인 제주경찰감찰청의 4.3당시의 모습, 문 밖으로 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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