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

한라산을 오르다...

k2man 2006. 3. 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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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대학원 연구실에서 열심히 프로그램 만드는 중...
학교에서는 무슨 작업을 하는지 1시간 가까이 인터넷이 안된다.
인터넷이 안되니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임시로 서버를 돌려서 작업하려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다.
드디어 짜증난다.
미쳐볼까?
그래 미치자....

2시 30분

가끔 오름이나 오를까 하고는 1년전에 사두고 꺼내보지도 못했던 5천원짜리 가방 하나를 찾아 냈다.
비상식량이었던 김 2개를 어떻게 찾아내서 가방에 넣었다. 귤도 찾아서 3개 집어 넣었다. 뒤지니까 작은 보온병도 하나 나온다. 물도 끓여서 넣었다. 가지고 있던 전재산 천원짜리 하나를 자판기에 넣어서 사발면도 하나 챙겨 넣었다. 그런데 손전등이 없다. 흠... 방법을 찾다가 PDA를 사용하기로 했다. 옷도 하나 더 입었다. 대충 된거 같다.

인터넷이 안되니 답답하다.

달력을 찾았다. 일출시간이 나온 달력도 있다. 대따 좋다. 서귀포에서 6시 53분 일출이라고 한다. 매일 일기예보를 본다. 오늘은 구름조금이다. 일출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차를 타고 성판악으로 갔다.

성판악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끄니 온통 깜깜하다.

대따 무섭다.
하늘을 봤다.
별이 정말 많다. 눈이 이렇게 된다.

가방을 메고 PDA를 왼손에 들고 PDA에 달린 LED라이트를 켰다.
대충 길은 비출만 한 것 같다.
출발했다.
정각 3시다.

길에 눈이 꽤 있었다. 등산화도 없고 아이젠은 더더욱 없었다. 그냥 대충 가기로 했다.

작은 LED라이트로 바로 앞을 겨우 비추며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눈에 뵈는게 없다.
가다보니 길이 아닌가 보다.
다른 사람들이 올랐던 발자국을 찾았다.
아니다 이길이 맞다.
사람들이 산에서 이래서 길을 잃는가부다 생각했다.

가다보니 발자국이 두 곳으로 나 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미워진다.
등산로로 안가고 왜 샛길로 가서 나같은 사람 애먹이는지 모르겠다.
눈짐작으로 발자국을 셋다.
모르겠다. 그냥 발자국이 많아 보이는 곳을 따라 갔다.
작업하던 화면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이넘의 막힌 곳을 어떻게 뚫어야 하나 생각했다.

한라산에는 들개가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넘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싸워서 쫓아 버려야 하나 생각도 했다.
가끔 바람이 음산하게 몰아친다. 귀신이 나타나면 어쩌나 생각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하늘을 봤다. 나무 사이로 새어나오는 별빛이 너무나 아름답다. 오늘은 달이 새벽 2시에 들어가 버리는 날이다.(출발하기전에 대따 조사 많이 했다. 달력에 나와 있다. 좋은 달력이다.) 달빛만 있었으면 정말 끝내주었을 것이다. 아마 라이트불빛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가끔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잡생각이 없어졌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가슴이 홀가분해진다. 그런데 다리는 아프다.

정상까지 보통 3시간 30분 걸렸던 것 같다.
6시 50분쯤 일출이니까 눈이 쌓였어도 서두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중간에 깨달았다. 내가 가려는 곳은 해발 1950m의 한라산 정상이었다. 당연히 일출이 빠를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힘이 빠졌다. 그래도 어쩌리 최대한 서둘렀다.

드디어 진달래밭이다.
잠깐 나무 난간에 앉았다.
귤을 하나 까먹고 따뜻한 물을 한모금 마셨다.
배가 고프다. 갑자기 졸리다.
근데 짠 사발면을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든다.
그냥 바로 일어났다.
앉아봐야 몸만 식어서 다리만 더 아플 것 같았다.
정상을 향해 올랐다.

날이 조금씩 밝는 것 같다.
수평선을 따라 구름이 있는 것 같다.
구름조금이라더니 일기예보 잘 맞는다.

새벽녘 안개가 자욱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군무라고 했었던가?? 갑자기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한참을 고민하면서 걸었다.
결국 생각이 안났다. 나 혼자 웃고 만다.

정상이 800m 남았단다. 근데 너무 멀다. 정말 800m가 맞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리 열심히 걸었다.
정상 부근이 가까워 오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서귀포, 남원, 표선, 멀리 조천, 세화 로 보이는 곳들이 불빛이 보였다. 성판악 코스로 오른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는 제주도 동쪽이 훤히 보인다. 동쪽의 오름군들이 펼쳐져 있다.

해안마을들에서 나오는 불빛이 참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카메라를 꺼냈다. 하늘의 별을 찍어 보았다. 잘 안찍힌다. 삼각대가 있었으면 그나마 찍어 보았을 터인데....

이번엔 서귀포를 찍었다. 10번은 찍은 것 같은데 손으로는 역시 힘들다. 그래도 대충은 찍힌 것 같다.

마지막 힘을 내서 정상에 올랐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낮은 구름때문에 해가 아직 뜨지 않았다.
아침 7시 드디어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
오늘도 역시나 구름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이다.

내가 20살때 성산으로 MT를 가서 보았던 그 바다에서 솟아 오르는 일출은 오늘도 보지 못한다. 그 MT때도 집안일로 첫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돌아 와야 했다. 일출보러 일출봉에 오르지 못했다. 그나마 버스안에서 그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감동이 느껴진다.

사진을 찍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갈때보다는 역시 수월했다. 기온이 오르면서 눈이 조금씩 녹는지 오를때보다 미끄럽다.
오를때는 바위 같았다. 갈증이 나서 눈을 뜯어 먹었다. 정말 돌같이 씹혔었다. 내려올때보니 너무 많은 먼지도 같이 먹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내려와 진달래밭을 지나고 다시 절반쯤 내려와서야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새벽 어둠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게 더 힘들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언제 올랐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길은 어떤지 설명을 해야 했다. 나중에 가니 사람이 너무 많다. 에라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 보는 척 지나쳤다. 그러다가 눈이 쌓인 곳에 푹 빠졌다. 쪽팔렸다. 그래도 그냥 조금 더 걸었다.

신발안에 눈이 있었다. 그넘들을 빼야 했다. 아까는 쪽팔려서 내색을 안 했을 뿐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사라약수에서 물을 마셨다. 보온병의 남은 물을 빼고 이넘들을 집어 넣었다. 약수도 꽤 많이 마셨다. 난 몸에 좋다는 것은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중간에 화장실은 없다.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드뎌 주차장이다. 바로 화장실 먼저가고 차에 타고 잠시 멍하니 있다 시동을 걸었다. 차문을 모두 내리고 공기를 마지막으로 마셨다. 9시 30분이다. 오늘도 지각이다. 교수님들이 찾지 않기를 기원하며 학교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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