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최남단 서귀포에서도 6월 항쟁 22주년을 맞아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더구나 제주도는 해군기지와 관련된 지역 현안들 까지 겹쳐 있는 상태여서 그 열기가 대단했고,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습니다.
서귀포의 중심이라고 할만한 일호광장(중앙로터리) 농협앞에서 열렸습니다. 서귀포 중심지에는 마땅히 많은 인원들이 모일 공간이 없어서 아쉽네요.
저녁 7시 30분이 되어가자 길을 가던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촛불이 불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가 없는 지역이다 보니 20대는 눈에 보이지 않네요.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를 위해서 제주시로 가서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에 들어갑니다. 평일에 서귀포에는 대학생들이 별로 없죠.
민중의례, 구호와 함께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이나 여타 대도시에 비하면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이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청와대까지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은 머리에 해군기지 반대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하고 나오셨네요. 이날 열린 행사는 민주주의 회복과 해군기지 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였습니다. 현재 제주지역 최대 현안이며 가장 큰 갈등이기도 합니다.
때론 힘있게 구호를 외치고, 때론 즐겁게 노래도 부르는 문화제였습니다.
좁은 곳이지만 정말 열기가 넘쳐났습니다.
나이는 달라도 바라는 마음은 하나인 것 같네요.
시민연설에 나섰던 분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배우지 못해서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으로 시작된 말씀이셨죠.
농촌지역이다보니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하신 어르신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조차 나오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런 자리에서는 항상 “배우지 못했지만 …” 이라고 운을 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 분들은 배우지는 못했지만 상식은 말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인근 도로를 행진했습니다. 인도로 행진해달라는 경찰의 요구도 잠깐 있었던 것 같지만 충돌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날 경찰은 소수만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행진은 서귀포 최대 번화가인 동명백화점 앞에서 마쳤습니다.
해산집회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의 상황은 잘 모릅니다. 이후 벌어진 90년대 초반의 상황은 어렸지만 시위대를 많이 쫓아 다녔기 때문에 많이 보았지만, 당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서귀포에서도 1만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고 그 어느 지역 못지 않은 열기를 내뿜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서귀포에서는 젊은 20대의 참여가 거의 전무했습니다.
참 많이 아쉽더군요. 저 또한 참여에 적극적이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하면 어떨까 생각도 듭니다.
제주대학교 등 제주지역총학에서는 도지사 주민소환 반대 성명을 발표하면 학습권 침해와 실용을 들더군요. 이게 현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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