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주이야기

제주 근현대사 아픔의 현장, 제주를 두 번 죽이는 일본

k2man 2009. 3.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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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번 망언으로 제주도민으로써 말로 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전에는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이 제주도 독립이 어쩌고 말을 했다가 제주도민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었습니다. 제주도가 왜 그리 민감한지, 제주도의 근현대사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나 국내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4.3사건 등으로 큰 난리를 겪었던 제주는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당선되려면 무조건 "무소속"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었고, 최근에는 조금 다르지만 한때는 실제로 그랬었으니까요.)

근현대사에 있어서 제주도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제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학살과 피해를 겪지 않은 지역이 없겠지만, 제주도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될 날이 멀어 보입니다.

제주도의 근현대사 아픔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제주도 대정으로 가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태평양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던 일제는 오키나와가 점령당하자 제주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기 시작합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말기로 치달으면서 결7호 작전(제주도 방어 작전)을 세우고 관동군 2개 사단과 일본 본토 부대까지 7만 5천이 넘는 병력을 제주도에 집결시킵니다.

1. 송악산 해안진지동굴

대장금의 마지막 이 장면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이 장면의 장소가 다름 아닌 송악산 해안 땅굴입니다. 가미카제 작전이 비행기를 이용한 작전만 실행에 옮겨 졌지만, 실제로는 자폭 고속잠수정 작전까지 존재합니다. 해안으로 오는 적 상륙함대를 맞서기 위한 자폭 잠수정을 숨겨두기 위해 만들어진 해안 땅굴이 바로 이 곳입니다.

 

2. 비행기 벙커

이 대정지역에는 이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유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바로 이 지역에는 알뜨르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비행장으로 당시 제주비행장이던 제주공항과 함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비행장에 보관되는 항공기의 벙커입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 가면 수 십개의 벙커가 있습니다. 직접 가보니 콘크리트 두께가 1m가 넘을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어 졌으며, 과거에 이 벙커들을 철거하려고 폭약을 터트려도 도저히 부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음의 스카이뷰로 본 사진입니다. 빨간색 원 부분이 바로 저런 벙커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실제 그 지역을 가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풍경이 펼쳐집니다.

 

3. 알뜨르 비행장

이 뿐만 아닙니다. 당시 알뜨르 비행장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일제에 강제로 빼앗겼던 비행장부지는 아직도 지역주민에게 돌려지지 않고 공군에서 점유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비행장은 아래 사진보다 훨씬 넓지만 우습게도 공군에서 지역주민에서 밭으로 일부를 임대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있는 부분은 유사시를 대비해서 항상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지역주민 소유였던 땅이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이후로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고 국가에서 소유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히려 지역주민에게 임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4. 백조일손지묘

이 지역의 아픔은 또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일명 '백조일손지묘'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 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4.3사건과 6.25를 거치며 누명을 안고 학살된 분들을 모신 곳입니다. 이 당시 학살터는 제주도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습니다. 당시 학살된 사람만 적게는 2만, 많게는 8만까지 보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불타버려 증언해 줄 사람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신고된 사람만 2만 가까이 됩니다.

최근 4.3사건에 대해서 노무현대통령이 사과하고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와중에, 이에 대해서 우익단체에서 헌법소원까지 냈더군요.

이 곳이 그 분들이 돌아가신 곳입니다. 둘레가 500m는 될만하고 깊이가 20m는 됨직한 큰 구덩이 입니다. 이 구덩이에서 수 백명이 학살되었고, 후에 이 시신들을 수습하고자 했으나 시신이 모두 엉켜있어 신원을 구분해 수습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충 유골을 사람 수만큼 수습하여 위에 나온 사진처럼 한 곳에 모셨습니다. '백조일손지묘'라는 이름도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습니다. 시신들이 모두 엉켜 있었어서 유족들 모두가 한 자손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5. 육군 제2훈련소 터

마지막 사진은 6.25전쟁 당시의 육군 제2훈련소 정문입니다. 6.25가 발발하자 전쟁에 나갈 젊은 남자들을 끌어 모으지만 훈련시킬 적당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육군 훈련소가 생기게 됩니다.

6.25당시 이 대정지역이 제2훈련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대정 입구 대도로변에 덩그러니 두 개의 콘크리트 기둥만이 남아 있습니다.

제1훈련소도 인접한 중문 근처 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나면서 제1훈련소는 폐쇄되고 대정에 있던 제2훈련소는 논산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논산의 제2훈련소가 숫자 2를 빼고 육군훈련소란 이름으로 바꾼지도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사진이 많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항공사진으로 대체를 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많은 현장 사진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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