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투리에도 문법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잘 안다는 것은 아니구요.)
그리고, 지명에도 규칙적인 단어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들렁"에 대해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들렁
"들렁귀", "들렁궤", "들렁모루" 등 제주의 많은 고유 지명에 들렁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이 "들렁"이란 단어는 속이 비어 있는 바위.. 그러니까 조그만 동굴이나 하늘을 가릴만한 모양의 바위 등이 있는 곳에 주로 이름이 붙습니다. (앞뒤가 터져 있는 굴을 의미한다고도 하네요..)
대표적인 곳인 올래 8코스 중간, 속칭 '조근모살'에 위치한 갯깍 주살절리대에 있습니다.
이 곳에 바위 중간에 구멍이 뚤려 있는 지형이 있는데, 이 곳을 "들렁귀", "들렁궤", "들렁귀궤" 등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여기에 뒤에 붙은 "귀" 또는 "궤"라는 단어도 동굴을 의미합니다. ('귀'나 '궤'나 별 차이는 없습니다. 발음을 글자로 옮기면서 나오는 차이, 지역에 따른 발음상의 차이 때문입니다.)
사진설명: 중문 '조근모살'을 지나며 볼 수 있는 '들렁궤' (사진출처:http://www.sanjeong.net/zbxe/1870)
'들렁귀'나 '들렁궤'라는 지명은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화산섬이란 특성 때문에 곳곳에 동굴과 같은 지형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곳인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방선문'입니다. 제주 10경 중 하나인 '영구춘화'가 본래 이 곳이란 사실을 아는 분은 아마 별로 없을 것 같네요.
'방선문'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자로 만든 지명이고, 지방의 고유 지명은 '들렁귀'입니다.
사진설명: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방선문', 본래 고유 지명은 '들렁귀'다.
사진설명: '방선문'에 가면 조선시대 말기에 양반들이 새겨놓은 마애명을 볼 수 있다. 사진의 중심에 있는 글씨는 조선시대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한시다.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보니 이름도 '신선의 세계로 가는 문'이란 뜻의 '방선문'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두 동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귀포시 서홍동 중산간에는 '들렁모루'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 '모루'라는 단어는 동산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오름은 아니고 작은 언덕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진설명: '들렁모루' 정상에 있는 바위다. 고인돌처럼 생겼다. 바위 밑이 비어 있는데, '들렁'이란 단어가 꼭 동굴에만 붙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궤'라는 단어는 동굴에 붙는다.
사진설명: 앞 사진에서 보았던 '들렁모루' 정상 바위에 올라서면 서귀포와 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밑이 비어있다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넘어가지 않는다. ^^;
'들렁모루'라는 지명을 풀이해 보면, '속이 비어있는 바위가 있는 언덕'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들렁모루에는책로도 갖춰서 있기 때문에 천천히 둘러보면 좋습니다. 봄에는 고사리도 많이 나고, 조그만 계곡도 끼고 있어서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멋진 대나무도 있습니다.
'들렁모루'는 서귀포에서도 아는 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찾기도 어렵고) 지도로 소개합니다. 한 번 찾아가 보시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 있었네라며 감탄할겁니다.
그러고 보니, 지도에는 '들렁모루동산'이란 말이 잘못 되었군요. '모루'가 '동산'이란 의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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