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포구는 조선시대에 이보다 좀 더 동쪽에 있는 조천포구와 함께 가장 중요한 포구였습니다. 제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전남 강진등에서 배를타면 해류와 바람에 의해서 이 곳 화북포구와 조천포구로 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제주성과 가깝기 때문에 이 두 포구만을 이용해서 육지를 왕래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제주사람들은 함부로 제주를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관리를 위해서도 몇 개의 포구를 지정한 것 같습니다.
화북포구의 역사를 알려주는 표석입니다.
영조11년(1735년), 김정목사는 화북포구 정비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정목사가 임기를 마치고 상경을 준비하던 도중에 화북진성내에서 돌연사 하였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마치 화북포구 공사도중 사망하였다고 와전되었다가 또다시 직접 돌까지 져나르며 공사를 하다가 무리해서 사망했다고 미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망원인은 알수 없다고 하니, 내가 적고 있는 글이 사실이 아니라 정말 돌을 져나르다 과로로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표석 옆에는 오래돼 보이는 비석이 있습니다. 김정목사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합니다. 한자에 약하다보니 도대체 머라고 적혀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김 이라는 글자는 보입니다. ^^
김정목사의 공덕비 바로 옆 서쪽에는 해신사라는 자그마한 당이 있습니다. 용왕신을 모시는 곳으로 순조 20년(1820년)에 제주 목사였던 한상묵이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유교사회에서 무속신앙의 한 형태인 용왕신을 모셨다는 점이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무속신앙이 워낙에 강한 제주민을 관체제 하에 두기위한 방법으로 이런 사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으로써 바다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갖는 것이기 때문이라네요.
아무리 권세가 있고 이름이 있어도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니까요. 추사 김정희도 제주를 떠나면서 이 곳에서 용왕신에게 제를 지내고 떠났다고 합니다.
헌종 15년(1849년) 제주 목사였던 장인식목사가 사진에 나와있는 "해신지위"라고 씌여진 위패를 안치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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