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주4.3사건

도민의 기억속에서 지우고자 했던 4.3유적, 다랑쉬 굴 사건

k2man 2010. 4. 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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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얼마나 이데올로기에 빠져 4.3과 같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제가 바보였던 것일까요?

아래의사진을 가지고 다랑쉬 굴을 찾아 갔습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 정도 사진이면 찾을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 근처가면 작은 이정표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지고, 이정표는 커녕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시간여를 가시나무에 찔리며 억새밭을 헤매었지만, 찾아 오는 것은 갈증과 밤의 어두움 뿐이였습니다.

 

 

다랑쉬굴 사건

1948년 12월 18일, 제9연대 제2대대는 다랑쉬마을 근처에서 피난민과 그들의 은신처인 작은 굴을 발견합니다. 군인들은 굴 밖에 있던 사람들을 총살한 후, 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오라고 외치며 굴속에 수류탄을 던져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밖에서 불을 피웁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질식해 죽게되고, 안에 있던 희생자는 11명이고, 이 중에는 여성 3명과 어린이 1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랑쉬굴은 1992년 세상에 알려집니다. 제주4.3연구소와 제민일보 4.3취재반이 합동으로 현장조사를 하고, 1992년 4월 2일 첫 보도와 이 후 조사로 희생자의 신원과 유족, 사건의 전모가 밝혀집니다.

 

 
[사진] 발견당시 다랑쉬 굴 내부의 희생자 유골들

 

 
[사진] 사람들이 이 안에서 살았음을 보여주는 솥 등 생활용품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진] 지금은 이렇게 큰 바위로 굴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끝나지 않은 4.3

사건의 실체가 알려진 뒤 유족과 도민 여론은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자”는 것이였으나, 얼마 후 행정,정보기관의 압력으로 인해 유골들을 화장하기로 결정됩니다. 결국 유해는 1992년 5월 15일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고, 다랑쉬굴은 큰 바위로 봉쇄되어 버립니다.

이 다랑쉬굴 내부에는 현재도 당시 사용했던 솥, 항아리 등 생활잡기들이 널려진 채 있다고 합니다. 굴 입구만이라도 찾아보고자 했으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4.3으로 그 실체조차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덧붙임

“제주 역사 기행” 책에 다랑쉬 굴을 도민의 기억속에서 지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현장 위치를 파악한 후 좀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위 내용 및 사진은 제주4.3평화공원 전시실에 전시된 것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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