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83

제주에 남아있는 6.25당시의 신병훈련소 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신병을 빠르게 훈련시켜야 했지만, 한반도 본토에서는 마땅히 그럴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육군훈련소를 만들어 신병을 양성하게 되는데, 그 터의 일부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가게되는 논산 육군훈련소(전 제2훈련소)의 전신인 대정 육군훈련소를 소개합니다. 위치 경도 : 126:15:43 위도 : 33:13:31 행정구역은 제주도 대정읍에 해당하며 송악산, 마라도 등의 관광지가 밀집한 곳입니다. 이 지역은 군사적요충지로 일제시대에는 최대의 비행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현재까지도 당시 활주로 일부와 전투기용 벙커들이 남아 있습니다.현재 민간인이 확인할 수 있는 육군훈련소 유물은 대도로변에 있는 훈련소 정문입니다. 이 외에도 막사 등의 일부 ..

누드비치가 될 뻔했던 조근모살 해수욕장

지난 일요일, 제주는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전날 비가 내리고 이날 기온이 올라가면서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사진은 좀 안나왔네요. ^^; '조근모살'은? 제주도 방언입니다. '조근'은 '작은' 이란 의미이고, '모살'은 '모래'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조근모살'은 '작은 모래밭'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 곳은 중문해수욕장의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조그마한 모래사장입니다. (중문해수욕장의 본래 이름은 '진모살'입니다.)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매우 작다고 봐야겠죠. 이 곳은 올해 초에는 국내 최초의 누드비치가 될 뻔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곳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래처럼 좁은 길을 따라 절벽을 내려가야 하고, 절벽이 병풍처럼 이 곳을 막고 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

제주/제주여행 2009.06.24

얼마 후면 또다시 사라질 넓은 꽃밭

6월 1일~2일 열렸던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 맞춰서 조성된 꽃밭입니다. 중문에 있는 제주컨벤션센터와 주상절리대(지삿개)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찾아 갔는데, 장마가 시작되서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하더군요. 어쩌면 더 운치가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6월에 맞춰서 조성한 곳이다보니 슬슬 꽃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조금씩 꽃이 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어찌보면 조금 아쉽습니다. 제가 알기론 이틀간의 정상회의를 위해서 꽃길 조성 등 조경에 들어간 예산만 1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지는 것인데요. 크기는 작은 꽃밭이더라도 오랫동안 지키고 관리해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

물이 없는 신비한 폭포, 엉또폭포

제주도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폭포가 있습니다.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 중에서는 동양에서 가장 높다는 정방폭포가 있고, 계곡이 아름다운 천지연폭포가 있고, 3단 폭포인 중문의 천제연폭포도 있습니다. 이 폭포들은 폭포 자체도 아름답지만 주변과 어울려 더욱 빼어난 풍경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관광지로도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물이 없는 신비한 폭포 오늘 소개할 곳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높고(무려 50m가 넘는 높이) 웅장한 엉또폭포입니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분들이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유명해지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폭포에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하천은 대부분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입니다. 아시다시피 제주도의 토양이 화산층이다보니 물이..

제주/제주여행 2009.06.23

4.3사건의 전개 - 3. 경찰의 발포와 4.3발발

1947 3월 1일, 제주시 관덕정 앞에서 수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3.1절 기념 집회가 열린다. 당시 시위로 오인한 미군정과 경찰은 매우 민감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말을 타고 가던 경찰이 넘어진 아이를 밟고 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분노한 시민들이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의 발포가 시작된다. 이날 7명의 무고한 도민들이 희생되었다. 3.10 도민 총파업 이 사건에 대한 항의는 3.10 도민 총파업으로 이어진다. 당시 총파업은 제주도 민·관을 통틀어 95% 이상이 참여한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총파업이였다. 제주도청, 법원, 검찰 등 관공서, 운수회사, 통신기관, 금융기관, 학교 뿐만 아니라 일부 경찰관까지 파업에 동참하였다. 레드 아일랜드, 레드 헌트 이에 대해 현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

4.3사건의 전개 - 2. 자치에 대한 열망

제주도에도 미군정이 실시된다. 내려진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올라간다. 미군 제59군정중대가 1945년 11월 9일 상륙하고 스타우트 소령이 제주도 도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 때 스타우트 군정관은 일제 시대에 일하던 경찰과 관리들을 재임용함으로써 민심을 자극하게 된다. 제주도의 건국준비위원회 지부는 1945년 9월 22일 인민위원회로 재편성된다. 초기에는 미군정과 협력관계를 유지했었다.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도민들이 직접 구성한 읍면리 단위까지의 도 전체 조직으로 성장하고 1947년 3월까지 공식 조직으로 활동한다. 제주도 인민위원회의 간부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이 많았다. 더구나 소문난 친일파만이 배제되었을 뿐 이데올로기가 아닌 하나로 뭉친 제주도를 대표할 만..

4.3사건의 전개 - 1. 일본의 요새가 된 제주와 패망

일제시대 제주도는 일본군의 요새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서 1945년 3월 ‘결 7호 작전’에 따라 제주에 제58군 사령부를 창설하고, 정예부대였던 만주 관동군 2개 사단을 비롯한 한반도 내 병력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일본군이 7만명에 달했다. (당시 제주인구 22만명) 이렇게 제주도는 일본군의 요새로 바뀌게 된다. 모든 전략 요충지에는 강제노역으로 땅굴을 만들고, 비행장이 확장되고, 각종 방어진지가 구축된다. [사진] 송악산에 배치된 대공포 [사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에 배치되었던 일본군 비행기 [사진] 모슬포에 배치된 무기들 다행히 미군은 제주도에 상륙하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군의 패망으로 막을 내렸다. 아마도 당시 제주도에 미군이 상륙했다면 제주도는 오키나와..

올해도 제주에 봄은 오는가? 제주 4.3, 그 끝은?

올해도 제주에 봄은 오는가? 제주의 가장 잔인한 계절, 봄… 제주의 봄은 봄이 아니다. 제주도민들은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봄이 오는 것을 힘들어 한다. 자신의 가족, 친구의 할아버지, 삼촌… 제주도민 중 아픔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제주 4.3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4.3은 이념갈등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던,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인 25,000 ~ 30,000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던 4.3은 언제야 끝나, 진정한 제주의 봄이 찾아 올까요? 제주 4.3사건은? 삼일절 발포사건과 총파업 1947년 삼일절, 경찰이 시위 군중에 발포하면서 6명 사망, 8명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인 반경활동을 ..

4.3을 제주역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로 받아주세요.

어제는 제주4.3사건이 일어난지 61주년이 되는 날이였습니다. 많은 유족과 도민들이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고, 4월 내내 도내 곳곳에서 4.3관련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61주기 4.3을 바라보며 몇 가지 느낌을 적어 보고자합니다. 4.3사건에 대해서야 이미 많은 글들이 있었으므로, 4.3진상보고서의내용으로 정리하겠습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밸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함. 제주도민은 가..

한국판 킬링필드 제주4.3 61주기, 희생당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올해는 1948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마무리된 제주 4.3사건 발생 61주기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주 4.3사건은 대부분 무고한 양민들이 3만명 가까이나 희생된 안타까운 현대사입니다. 사실 그 규모에서 본다면 한국판 킬링필드라고 불릴만할 정도입니다. 초토화작전으로 아예 불타 사라져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만 수십, 수백에 이를 정도입니다. 3만명이 희생됐다? 관련글 : 올해도 봄은 오는가? 제주 4.3 그 끝은? 제가 왜 피해규모를 3만명으로 소개했냐면, 4.3진상위원회에서 당시 피해에 대해서 신고를 받았습니다. 신고된 사망 및 실종자만 1만 5천이 넘었죠. 50년이 넘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이미 숨진 목격자나 유족들을 추측할 때 더 많아진다는 결론..